이 기사는 6월 16일 오후 5시 30분 한국경제신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프리미엄9'에 게재됐습니다.SK하이닉스가 올해 4분기 중 최대 100조원 규모의 초대형 주주환원 정책을 추진한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재평가받는 동시에 대규모 주주환원 정책으로 기업 위상을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승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16일 투자은행(IB) 및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오는 4분기 중 자사주 매입, 현금 배당 등을 포함해 100조원 안팎의 주주환원책을 추진 중이다. 자사주 매입 규모는 전체 주식의 2%대 초반 물량으로 알려졌다. 내달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 물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을 거쳐 이르면 내달 중순께 ADR 상장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미국 상장을 공식화한 뒤 진행한 글로벌 기관투자가 대상 로드쇼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향후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며 “ADR 상장을 마무리한 뒤 오는 3분기 실적 발표 전후로 최대 100조원 규모의 주주환원책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의 대규모 주주환원과 반도체 시설 투자의 이면에는 하반기 실적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역대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과 잉여현금흐름(FCF) 창출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25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번 자사주 매입은 SK하이닉스가 내달 미국 증시에 신주 발행을 통한 ADR 상장을 마무리한 뒤 제기될 수 있는 주주가치 훼손 우려도 불식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신주 발행으로 최대 40조원대의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자금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AI 인프라 구축 비용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은 60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최태원의 '빅픽처'…ADR 상장發 '지분 희석 우려' 판 뒤집었다
SK하이닉스, 100조 규모 주주친화 정책 추진
“엔비디아와 비교하면 SK하이닉스는 지금(지난해 6월 200조원 돌파 당시)보다 열 배(2000조원)는 더 커져야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 초 출간된 SK하이닉스 성공 이야기를 담은 저서 <슈퍼 모멘텀>에서 한 말이다. 최 회장은 저서에서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이 200조원을 넘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며 성장을 향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최 회장이 가슴에 품어온 ‘시총 2000조원’ 꿈이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통해 곧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6월 200조원이던 SK하이닉스 시총은 16일 종가 기준 1697조원을 넘어서며 폭발적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SK가 이번에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라는 역대급 주주환원 정책을 추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주주 친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최 회장의 통 큰 결단으로 분석된다.
◇ 정부 밸류업 정책에 ‘역대급’ 부응
SK하이닉스가 이번에 100조원 안팎의 역대급 주주환원 카드를 꺼내 든 가장 큰 배경은 정부가 적극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대규모 자사주 매입과 통 큰 배당으로 국내 자본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주환원에 앞장서는 기업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SK는 기대하고 있다.
대규모 주주환원 정책은 최 회장의 지배력 방어와도 맞물려 있다. 최 회장은 SK㈜ → SK스퀘어 → 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SK하이닉스를 지배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신주를 발행하면 현재 최 회장이 보유한 SK스퀘어 지분 20.5%가 줄면서 경영권이 다소 취약해질 수 있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을 병행하면 SK스퀘어 지분이 오히려 21%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주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강력한 당근책 성격도 짙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ADR 발행 과정에서 통상 제3자 배정 방식의 신주 발행은 유통 주식 수를 늘려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를 희석하는 시장의 악재로 작용한다. 그러나 상장 직후 대규모 주주환원에 나서면 지분 희석 우려를 상쇄하고 오히려 주가를 부양하는 호재로 전환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ADR 상장 목적은 자금을 조달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라는 메이저리그에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재평가받기 위한 것”이라며 “여기에 대규모 자사주 소각과 배당까지 더하면 주가 상승세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글로벌 기업가치 재평가
SK하이닉스 ADR 상장의 실질적 이유는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재평가받기 위함이다. SK하이닉스는 세계 1위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과 경쟁사 미국 마이크론을 크게 뛰어넘는 영업이익 창출력을 갖췄지만, 주가수익비율(PER) 멀티플은 두 배 이상 낮게 평가받고 있다.
세계 무대에서 대만 TSMC, 엔비디아와 같은 선상에서 제대로 된 인공지능(AI) 컴퍼니로 평가받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최 회장은 지난 3월 GTC 2026에서 “한국 주주뿐만 아니라 미국과 글로벌 주주에게도 노출될 수 있어 더 글로벌한 회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ADR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천문학적인 반도체 시설 투자에 속도를 내는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최 회장은 이달 초 대만을 방문한 자리에서 “5년 내 웨이퍼 생산능력을 두 배 규모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팹 4기를 짓는 데 필요한 비용은 2021년 추산 당시 128조원 수준에서 현재 총 600조원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적기 투자를 위한 자금 수혈이 절실하다.
이 모든 전략의 궁극적 목표는 AI 반도체 시장 패권 강화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HBM 시장에서 압도적 1위이던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 경쟁사들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HBM4를 둘러싸고 성능 측면에서 삼성전자에 다소 밀리며 1순위 공급망 지위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상장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을 통해 재빨리 설비 확충에 나서 폭발하는 AI 메모리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1위 자리를 수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채연/이선아/송은경/강해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