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에서 편하게 발견하세요
QR 코드

컨텐츠영역

삼전닉스 쏠림장의 역설…흑자기업도 증시 퇴출 위기

빈난새/심우일
2026. 08. 28 18:16

한국경제신문의 투자 전문 유료 플랫폼 '한경 프리미엄9'(www.hankyung.com/premium9)에 실린 기사입니다. '한경 프리미엄9'을 구독하시면 더 많은 주식 투자 기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산업용 포장재 회사 원림은 58년 된 흑자 기업이다. 최근 5년간 매년 흑자를 냈고 지난해 영업이익은 이자비용의 16배를 웃돌았다. 고배당 기업 인증을 받고 사업 다각화도 추진하고 있지만 시가총액은 딴판이다. 작년 상반기 377억원에서 현재 340억원으로 줄어 내년이면 37년 만에 상장폐지될 위기에 놓였다.


정부가 시총 기준 미달 기업을 상장폐지하는 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뒤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총은 23% 늘었지만, 상장사 10곳 중 8곳은 오히려 몸집이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극소수 대형주에 자금이 몰린 결과다. 심각한 수급 쏠림에 ‘좀비기업 퇴출용’ 시총 요건이 정상 기업까지 겨눌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업계는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도 유예를 요구하고 나섰다.
◇부실 징후 없어도 ‘상폐 위기’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최근 금융당국에 지난달부터 시행된 상장폐지 제도의 시총 요건 적용을 1년간 유예하고 보완책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상장협은 의견서에서 “제도 발표 당시와 달리 소수 대형주로 시장 수급이 집중되는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대다수 상장사는 시총이 크게 감소했다”며 “기업에 통제할 수 없는 시장 전체 유동성과 수급 배분에 따라 결정되는 시총 기준을 일괄 적용하는 방식은 제도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2월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부실 기업 퇴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상장폐지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시총 기준을 30거래일 연속 밑도는 기업은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이후 90거래일 동안 연속 45거래일 이상 시총 요건을 회복하지 못하면 즉시 상장폐지하는 것이 골자다. 7월부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시총 300억원, 코스닥시장 상장사는 200억원 기준이 적용됐다. 내년 1월부터는 각각 500억원, 300억원으로 문턱이 높아진다.

금융위는 이를 통해 부실 기업을 조기에 정리하고 시장의 신뢰를 높인다는 취지다. 문제는 심각해진 증시 쏠림이다. 지수 상승을 이끈 자금이 일부 주도주에만 쏠리면서 시장 전반의 거래는 오히려 위축됐다.

정부가 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2월 12일 이후 이달 26일까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803곳의 합산 시총은 23% 증가했다. 그러나 개별 기업으로 보면 전체의 77%에 해당하는 619곳은 시총이 오히려 줄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체 거래대금의 최대 70%를 빨아들인 결과다. 상장폐지 요건 아래로 밀려난 기업도 늘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가운데 시총 300억원 미만 기업은 23곳에서 39곳으로 70% 증가했다. 내년 1월 적용되는 500억원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도 66곳에서 103곳으로 늘었다. 코스닥시장은 증가폭이 더 컸다. 시총 200억원 미만 기업(우선주·기업인수목적회사 제외)은 41곳에서 121곳으로 세 배 많아졌고, 시총 300억원 미만은 167곳에서 334곳으로 두 배가 됐다.
◇금융위도 “속도 조절 여지”
이들을 모두 부실 기업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상장협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시총 500억원 미만 유가증권시장 기업의 53%(58곳)는 올 1분기 흑자를 냈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기업과 고배당기업도 각각 12곳, 11곳이었다.

전문가들은 ‘좀비기업 신속 퇴출’ 방향에 동의하면서도 정량 기준을 일괄 적용하는 제도의 맹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지난 12일 토론회에서 “시총은 시장 상황, 투자심리, 유동성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며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 기업가치가 정상적으로 평가되지 못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90거래일의 회복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지적도 많다. 미국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는 각각 180일·6개월을,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1년의 개선 기간을 준다. 금융당국도 보완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24일 국회에서 관련 질의를 받고 “제도가 시행 중인 만큼 전면 변경은 어렵다”면서도 “미세조정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향후 시총 요건 강화 일정을 두고 속도를 조절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빈난새/심우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