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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돈 5배 줘도 못 구한다'…삼전닉스에 목줄 잡힌 中 [강경주의 테크X]

강경주
2026. 09. 12 09:30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로 첨단 고대역폭메모리(HBM) 확보가 막히면서 중국 인공지능(AI) 반도체 업체들이 비공식 반도체 유통망까지 뒤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어둠의 경로'를 통한 조달에 웃돈이 붙으면서 HBM 가격이 치솟고 화웨이, 캠브리콘 등 중국산 AI 가속기 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다는 후문이다. HBM 시장을 장악한 '삼전닉스' 메모리가 중국 AI 경쟁력의 병목이 되면서 HBM이 AI 패권을 좌우하는 전략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1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수출통제로 첨단 HBM을 구하기 어려워진 중국 업체들이 이른바 '회색시장'으로 불리는 비공식 유통망에서 정상 가격의 몇 배를 주고 메모리를 조달하면서 AI 가속기 가격까지 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소식통 3명을 인용해 화웨이가 AI 가속기 카드 '어센드 950DT'의 제시 가격을 25만위안(약 3만7255달러) 이상으로 올렸다고 보도했다. 계약 조건에 따라 불과 두 달 전 고객사에 제시한 가격보다 20~50% 오른 수준이다. 어센드 950DT는 화웨이의 최신 AI칩과 메모리 등을 결합한 가속기 카드로 올해 4분기 출시된다.

중국의 떠오르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인 캠브리콘도 차세대 AI칩 '690'의 제시 가격을 두 달 전보다 20~30% 인상했다. 메타엑스와 일루바타 코어엑스 등 다른 중국 팹리스도 비슷하게 가격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는 HBM 가격 급등으로 AI 컴퓨팅 인프라 구축 비용이 높아지면서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엔비디아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공급망 병목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가격 급등의 핵심은 AI 연산에 필수인 HBM이다. HBM은 여러 개의 메모리칩을 수직으로 쌓아 AI 프로세서가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고성능 메모리다. 첨단 HBM 시장은 한국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이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2024년 12월부터 일부 첨단 HBM의 중국 수출을 추가로 제한하면서 중국 AI칩 업체의 조달이 어려워졌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이후 회색시장 경로를 통해 HBM 확보에 나섰다. 이렇게 조달하는 HBM 가격은 중국 이외 지역 구매자가 지불하는 가격의 수배에 달한다. 메모리가 AI 가속기 생산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HBM 조달가격 상승이 완제품 가격으로 그대로 전가되고 있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화웨이는 어센드 950 시리즈에 자체 HBM 기술인 'HiBL 1.0'과 'HiZQ 2.0'을 사용한다고 밝혔지만 해당 메모리를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HBM 부족은 미국의 수출통제로 엔비디아의 최첨단 AI칩을 공급받지 못하는 중국이 추진해온 국산 반도체 대체 전략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규제로 중국의 500억달러 규모 AI칩 시장에서 엔비디아 제품의 공백이 생기면서 화웨이와 캠브리콘 등 현지 업체가 혜택을 봤지만, 이제는 HBM 확보가 새로운 병목으로 떠오른 것이라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주요 HBM 업체의 협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HBM은 고난도 적층·패키징 기술이 필요한 만큼 공급사가 제한적이고, 시장도 소수 업체 중심의 과점 구도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HBM 시장 매출 기준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0%로 1위를 유지했다. 삼성전자는 33%로 2위에 올랐고, 마이크론은 18%를 기록했다. 특히 AI 서버 투자가 미국 빅테크뿐 아니라 중국 로컬 업체로도 확산하면서 HBM 수요는 더 늘어나는 분위기다. 공급 제약이 이어지면 HBM 가격 강세와 장기공급계약(LTA) 중심의 시장 구조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HBM을 확보하려는 중국 업체들이 정상적인 LTA보다 비공식 조달 라인인 중지앤상(中间商)을 먼저 찾는 분위기"라며 "팹리스가 밀집한 선전과 '베이징의 실리콘밸리' 중관춘 등 반도체 현장에서는 물량을 쥔 무역상에게 웃돈을 얹어서라도 HBM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HBM 현물가격이 장기계약 가격의 4~5배까지 뛰면서 비공식 유통망에 붙는 프리미엄도 커진 상황"이라며 "공식 공급망 밖의 회색시장이 중국 AI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조달 창구로 자리잡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HBM은 모방 강국인 중국도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이 아니어서 공급이 막히면 AI 가속기 출하 자체가 차질을 빚는다"며 "중국 업체들이 HBM 조달을 위해 현물시장과 비공식 채널을 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